Earth Letter 03

기후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

이 '난장판'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것일까

Oct 4, 2022


기후 정의의 출발선에  10대 소녀가 있었다

2018년 여름, 스웨덴의 한 소녀는 매주 금요일 등교 거부를 하며 스톡홀름의 수도 국회의사당 앞을 찾았습니다.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school strike for climate)’이라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인 소녀의 이름은 그레타 툰베리. 오늘날 기후 변화와 기후 위기, 그리고 ‘기후 정의’를 논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환경 운동의 아이콘이자 2019년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 여러 차례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던 인물입니다.

KBS1 <다큐 인사이트_천년 거목의 죽음, 바오밥의 경고> 방송 캡처본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한 그 어떤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한 적 없었던 10대 소녀가 대체 어떻게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를 수 있었을까요? 만약 당신이 이 이름을 처음 들었다면 앞서 말한 등교 거부 해프닝이 다소 의아하게 느껴질 겁니다. 기후 때문에 학교를 안 간다고? 초록창에 ‘그레타 툰베리’라는 이름을 쓰고, 그녀가 설파했던 많은 메시지를 듣게 되겠죠. 다소 유별난 그녀의 행동은, 그동안 먼 발치에서 기후 위기를 바라봤던 당신에게 작은 파동을 일으킬 겁니다. 어이, 거기 당신, 당신도 이 카운트다운 소리에 귀를 기울여! 라고요.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그레타 툰베리’를 검색하는 이들의 빅데이터를 살펴보면 10대 여성이 가장 많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미래 세대들에 미치는 그녀의 영향력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벨기에 브뤼셀 유럽경제 사회위원회에서 그레타는 “We have started clean up your mass, and we will not stop until we all done.(우리는 당신들이 만든 난장판을 처리할 것이며, 다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고 외칩니다. 기성세대가 만든 성장 중심의 체제로 인한 위기에 책임을 져야 하는 건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미래 세대’일 테니까요.


그녀가 단지 16살이었을 때, 2019 UN기후행동서밋에서 각국 정상들에게 “How dare you(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나)”라며 울분을 토한 부분 또한 같은 맥락에서 미래 세대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녀는 아마 미래 세대에게 아이돌을 제외하고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10대일 겁니다. 전 세계에 글과 이미지로 퍼진 그녀의 행동은 글로벌 기후 운동인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로 이어졌고, 한국에서도 기후정의를 위한 행진이 일어났습니다. 2019년 9월, 5천여 명의 개인과 단체가 모여 진행한 기후정의행진이 바로 그것이죠.

 2022년 9월 24일  나이/직업/정치색/종교 불문 3만5천 명의 시민이 '기후 정의'를 위해 거리로 나섰습니다. 

기후 정의란 무엇일까? 거리로 나선 사람들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 2022년 9월 24일, 3년만에 서울 광화문에서 기후정의행진이 다시 열렸습니다. 이번엔 3년 전보다 7배나 많은 3만5천여 명의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부터 머리가 희끗한 중장년층, 심지어 유모차에 탄 유아까지 다양한 구호가 적힌 종이를 들고서요. 직업, 정치 성향도, 종교도, 각자의 위치와 입장도 다른 사람들이 기후 정의를 외쳤습니다. 그 중 누군가는 잃어버린 삶의 터전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곧 잃어버릴 일자리에 대해 호소했습니다.  

미래 세대의 기후 정의에 대한 호소는 더욱 절박합니다.

그레타의 1인 시위부터 ‘미래를 위한 금요일’ 그리고 기후정의행진으로 이어지는 기후 운동의 핵심엔 ‘기후 정의’라는 메시지가 존재합니다. 기후 정의란 무엇일까요? 기후 정의를 논하기 위해서는 기후 ‘부정의’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상 기후의 원인은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 온난화입니다. 그렇다면 대기 중에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한 건 누구일까요? 2020년 세계자원연구서(WRI)에 따르면 미국, 중국, EU, 일본 등이 포함된 상위 10개 나라가 온실가스의 70%를 배출했다고 합니다. 소득 수준을 기준으로 살펴 보면 소득 상위 10% 인류가 전체의 절반이 넘는 온실가스를 배출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하위 50%의 빈곤층이 배출한 온실가스는 7%에 그친다고 해요.(출처: 옥스팜)


올 여름엔 전 세계적으로 이상 기후로 인한 피해가 속출했습니다. 서울엔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습니다. 도시가 잠기는 난리통에서 고층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큰 피해가 없었지만 신림동 반지하에 사는 세 모녀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1인당 GDP가 1,500달러에 불과한 빈국 파키스탄은 국토의 3분의 1을 집어삼킨 홍수로 막대한 재산과 인명 피해를 입었습니다. 파키스탄이 배출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고작 전체의 0.4%에 불과합니다. 미국과 유럽 등 부유한 상위 나라가 경제 성장을 위해 무분별하게 배출한 온실가스의 대가를 치르는 것은 아프가니스탄, 에티오피아, 남수단, 파키스탄 등 가난한 나라입니다.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2022년 9월 23일 미국 뉴욕 유엔(UN) 총회 연설을 통해 “온실가스를 주로 배출하는 부유한 나라가 기후 변화로 인한 재난을 겪는 개발도상국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원인을 제공한 쪽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 불평등과 부정의한 현실. 이것을 비판하고 바로 잡고자 외치는 것이 바로 기후 정의입니다. 

탄소 중립을 위한 개인과 기업의 노력

지구 온난화와 이상 기후를 단순히 해수면과 기온의 상승과 같은 과학적 논리로, 혹은 탄소 상쇄와 같은 덧셈과 뺄셈의 논리로만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누군가는 부와 권력의 불균형으로 만들어진 기후 불평등, 부정의의 상황에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이죠. 기후 전문가들의 경고처럼 앞으로 더 빠르고 심각하게 극단적인 이상 기후가 계속해서 찾아온다면,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건 부와 권력의 최하단에 있는 취약 계층일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렇기에 '기후 정의적'인 관점에서 이 위기의 해결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대상은 성장을 위해 화석 연료를 사용하며 지구 온난화를 주도한 선진국과 기업입니다.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물질적이고 성장 중심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 과정에서 배출한 탄소를 탄소 상쇄권의 구입 등을 통해 해결하고는 합니다. 이미 배출된 탄소를 상쇄하고자 하는 노력도 물론 의미가 없진 않지만, 그에 앞서 탄소 배출량 자체를 감축하기 위한 목표 설정과 제도 마련, 시스템과 기술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입니다.


2022년 9월 15일 탄소 중립을 선언한 삼성전자 

그런 의미에서 최근 삼성전자의 탄소 중립 선언은 주목할만 합니다. 전 세계 ICT 기업 중 전력 사용량이 가장 많은 삼성전자는 국내 재생 에너지 인프라 미비 등의 이유로 RE100* 선언을 미뤄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RE100과 2050 탄소 중립 선언을 포함한 신환경경영전략을 발표했습니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가전/휴대전화를 담당하는 DX(디바이스 경험) 부문부터 우선적으로 탄소 중립을 달성하고 반도체 영역인 DS(디바이스 솔루션) 부문을 포함한 전사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이루겠다고 밝혔습니다.

*RE100: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 에너지로 전환하는 국제 캠페인


삼성전자의 탄소 중립 선언 이후 삼성SDI,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에스디에스 등 삼성 전자 계열사들 또한 10월 중으로 RE100에 동참할 것을 선언했습니다. 그 중 삼성SDI는 ▲ 전 사업장 재생 에너지 사용 ▲ LNG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 저감 ▲ 탄소발자국 인증 제품 확대 ▲ 전 업무 차 무공해 차 전환 ▲ 사업장 폐기물 매립 최소화 ▲ 사업장 용수 사용량 절감 등의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대규모 전력 사용이 불가피한 삼성 계열사들까지 RE100 선언에 나서면서, 산업계 전반에 탄소 중립에 대한 중요성과 필요성이 환기되고 있습니다. 

정부와 기업이 탄소 중립에 나서겠다 선언한 와중에 여전히 많은 과제들이 남아있습니다. 일례로, 삼성전자와 계열사들이 모두 RE100을 달성하기 위한 재생 에너지는 다 어디서 나올까요? 재생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고, 이것은 또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하는 ‘기후 부정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태양광발전소와 풍력발전소가 지어지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삶의 터전과 일거리를 잃고 침해된 권리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어쩌면 모두에게 만족스럽고 평등한 탄소 중립 생태계를 만든다는 건, 유토피아같은 환상일지도 모릅니다. 때문에 이 과정에서는 최선의 목표를 위한 사회적 합의와 이해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정부와 기업은 기후 문제 해결의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또 다른 부정의를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며, 개인과 집단에겐 미래 세대를 위한 공동의 목표를 위한 양보와 이해의 자세가 요구됩니다. 이미 누군가에게는 이상 기후로 인한 끔찍한 재앙과 위기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국가와 기업의 책임으로만 떠넘긴다면, 탄소 중립의 길은 점점 더 요원해질 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재 세대' 모두가 생명과 지속 가능성을 가치의 기준으로 삼고 탄소 중립을 향한 각자의 몫을 실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래 세대가 져야 할 이 '난장판'에 대한 책임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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